얼마 전 서경식교수의 책이 을 읽은 적이 있다.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였는데.... 책 내용 자체는 평화박물관에서 서경식 교수가 강연한 것을 모아놓은 책이지만...제목이 계속 고민스럽게 한다. 일본군'위안부'문제를 접하고 난 후 나눔의 집에 왔다갔다 하면서, 수요시위에 왔다갔다 하면서 계속 고민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문제다... 과연 고통의 기억과 연대는 가능한가... . 이 제목을 곱씹으며계속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생각하고 있었다.
얼마전에 읽은 또다른 책인, 『그림 속으로 들어간 소녀』에서 이것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생각할 수 있었는데, 동정과 연민이다.
연민이란 타인에게 있을지도 모르는 슬픔에 대한 우리들의 상상력이다. 동정이 계급적 의식을 전제한, 타인의 불행에 대한 제도적이고 고양된 슬픔의 베풂이라면 연민은 너와 내가 같은 인간이란 사실에 대한 슬픔이다. 그러므로 동정엔 실천이 따르지만 연민엔 실천이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연민은 사람을 주저앉게 만든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혐오를 낳기도 한다. 까닭에 연민은 너와 내가 같은 슬픔을 지니고 있다는 비극적 이야기에 끊임없이 경도되고 싶어하는 자아의 상상력이다.. – -218쪽-
타인을 연민하는 건 자기를 이해하는 것이다. 자기 연민은 가장 서글픈 상상력이다. 내가 아닌 것들을 이해하는 동안 나는 따뜻해져 간다. 그리고 나는 이 따뜻함을, 내가 이해한 모든 것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한다. 내가 이해한 타인의 슬픔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일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그건 자기 연민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연민하고, 타인의 있을지도 모르는 슬픔을 연민하며, 나와 연민과 타인에 대한 나의 연민 사이에 있는 어떤 벽을 슬퍼한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같은 슬픔으로 괴로워하지만, 우리가 서로 똑같은 어떤 슬픔을 가지고 있다 해도 서로에게 보여줄 순 없다. 우린 우리의 슬픔으로 타인의 슬픔을 상상한다. 같은 것이지만, 우린 같다고 상상해야 타인의 슬픔을 겨우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의 슬픔은 모두 다르다. 난 이렇게 슬픈데, 넌 왜 저렇게 슬픈가? 내 안에 너의 존재에 대한 슬픔이 있어도 넌 왜 모르고 어깨를 스쳐가는가? 내가 상상한 슬픔이 너의 슬픔도, 나의 슬픔도 아니라면 그건 어디에서 온 슬픔인가? 나는 지금 너를 연민하고 있다. – 218-219쪽
이전 문필기 할머니의 장례식을 갔다 오면서 든 생각(http://theroadtaken.tistory.com/2460692)과 이어진다만.... 나는 여기까지 밖에 안되는구나.... 또는 나는 이것밖에 안되는 사람인가... 라는 생각이 그렇지.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보면서, 사람들이 느끼게 되는 감정은 과연 동정일지, 연민일지, 당장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은 동정의 쪽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걸로 끝나는 건가...... 정말 사람들을 오랫동안 움직이게 하는건 연민이 아닐지... 생각해본다.
덧 : 지난번 피스로드에 참가하고 한 후, 다음 하이픈 기자단에서 활동중인 친구가 있다. 다른 친구들과 기사를 썼는데, 모금이 얼마 안남았더군. 혹 이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 중 관심있으신 분들은.. 클릭부탁~~~
피스로드 참가자, 스탭 여러분, 잘지내고 계세요? 진행보조스탭을 맡았던 김상규입니다.
참가자분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보니 스탭에게도 보내야 할 것 같아서 조금 덧붙여서 메일 써요.
피스로드가 마친지 이제 거의 2주가 다 지나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다시 학교에 돌아가셨을 테고, 어떤 분들은 직장에, 아니면 집에서, 아마도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셨을테지요. 무엇보다 다행이라고 생각 되는건, 크게 아픈사람 없이, 사고 없이 행사가 끝난 것이에요. 일주일동안 시끌벅적하던 나눔의 집이 피스로드가 끝나니 조용합니다. 다른 행사때도 그렇지만 일주일 내내 북적여서 그런지 더 조용한 기분이 드네요. 지난번 오키나와 피스로드는 거의 스탭 연수식이라서, 실제로 참가자들을 새로 모집하고 한 것은 거의 1년만입니다.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마지막 날 많이 친해져있는 모습에 안심했어요.
이번 피스로드는 어떠셨는지요,
할머니들을 직접 만나고, 수요시위를 가고, 시민단체를 방문하고, 밤마다 토론했던 것은 좋은 기억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저역시 그랬으니까요.
제 이야기를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나눔의 집과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저도 지난 2005년 여름에 피스로드에 참가를 하면서 부터입니다. 벌써 3년째가 되어가고 있네요. 저에게 피스로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계기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전 역사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대학교 때는 독립운동사에 관심이 있었고, 또 피스로드에 참가하기 바로 전에 광복군 활동을 했던 사람의 행적을 뒤쫓는 행사에 참가를 했었지요. 졸업논문도 (논문이란 이름을 붙이기는 참 부끄럽습니다만... 거의 짜깁기였으니까요...) 당시 중국에서 무장독립운동을 하고 있던 조선의용군에 대해서 썼으니까요.... 사실 국사학과를 들어가게 된 계기도 고등학교때 교과서를 보면서 "~~~~ 했으나 일제의 탄압에 부딪혀 ~~~ 했다"란 서술을 보면서 너무 답답해서 였습니다."쪽바리"란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일본놈들"에 대한 편견은 많이 심했고,애국과 민족에 대해서 별로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만...)
그러다가 피스로드란 행사를 알게 되고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일본군'위안부'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할머니들을 직접 만나고, 어느새 눈에 익어 버리면서... 일본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고, (물론 일본이란 국가가 가고 있는 방향은 또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고 봐요...) 일본 안에서, 또 한국 안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이 생겼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조금 더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대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더 공부한답시고 이러고 있습니다.
처음 수요시위에 갔을 때가 생각납니다. 3.1절이었는지 8.15였는지 잘 생각이 나지는 않습니다만 꽤 사람들이 많이 왔었습니다. 아는 선배가 '행사 하는데 좀 도와주지 않을래?'라고 물어서 행사하는 무대 옆에서 기자들을 막는 사람으로 참가를 했었어요. 할머니들 바로 코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행사가 진행 중인데도 촬영으로 막고 있는 사람들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잘못해서 한 사진기자 아저씨랑 싸울 뻔도 했었죠.
그러던 중 한 중학생 아이가 한 말에 확 부끄러워졌어요. 그 아이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할머니들이 참혹한 고통을 당하셨다며 발언을 했었는데, 그때부터 막 눈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역사를 배운다는 사람이 이런 것도 제대로 모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었죠. (사실 역사를 공부한다고 해도 모두다 이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건 아닙니다만 여하튼 당시는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수요시위를 마치고 엉엉 울면서 집에 갔습니다.
그렇게 가슴아파하면서 집에 왔습니다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수요시위에 생각은 했지만 수업에 바빠서, 동아리 활동을 하느라 내 생활에서 이 문제는 잊혀 갔습니다. 결국 내 문제가 아니었던 거죠. 그렇게 또 몇 년 지내다가 우연한 기회에 나눔의 집에 가게 되고, 피스로드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피스로드에 참가한 것도 나눔의집 국장님의 '일본학생들은 많이 오는데 한국학생들은 거의 오지 않는다'라는 말에 ‘민족적’분노로 참가하게 되었죠.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려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 하면서,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제 자신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다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침 수요일에 수업이 없으니 수요시위나 나가보자’ 였지요. 그러다 보니 할머니들과도 익숙하게 되고, 그 이후부터 피스로드의 스탭을 하면서, 결국에는 나눔의 집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되었네요.
피스로드 때 모두들 흘렸던 눈물도 그렇지만 요즘도 수요시위를 나가다 보면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이제 익숙해진 탓인지, 아니면 오만해진 것인지, 지금은 그리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다만, 그런 사람들을 볼 때 마다처음에 내가 흘렸던 눈물은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피스로드 마지막날 일부러 ‘믿지않는다’는 식의 이야기를 한 것도 이전에 제가 펑펑 흘렸던 눈물이 생각나서였어요.... 뭐 그렇습니다.
일주일간 느꼈던 고민의 크기나 양은 사람마다 각자 다르고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고민을 푸는 것도 힘들 거고, 아마 한참동안 안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겁니다. 저마다 그런 고민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스탭으로 있었던 사람들이나 이번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역사적 사실, 혹은 할머니들과의 관계 정도만 다르지 그 고민을 하는데 는 비슷해요. 그래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에도 비슷한 고민을 하던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아마 일상으로 돌아가서 많이 바쁘실 겁니다. 이번에 모였던 사람들이 다 다시 만나기도 어려운 일일 거에요. 사실 나눔의 집이 교통편이 그리 좋지도 않고요. 그렇지만... 다시 한번 여러분들을 나눔의 집에서 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다시 복귀했지만 이전에 서태지가 은퇴하면서 한 이야기가 있어요. “END가 아닌 AND” 라는 말이에요. 이번 피스로드에 참가하신 분들께도 이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습니다. 2009년 봄 피스로드는 끝났지만 각자의 피스로드는 끝나지 않을 거라고요.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이전의 포스팅에서도 몇번 했지만, 올해도 피스로드를 진행합니다. 처음에는 참가자로, 그리고 스탭으로, 이제는 같이 만들어가는 입장이 되었네요. 그래도 어떻게 만들어갈까,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상황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나씩 하는것. 제게는 피스로드가 그 하나입니다.
우얏든 2009년도 피스로드를 시작합니다. 제 블로그를 방문하시는 분들은(몇명이나 되려나만...) 관심가져주셨으면 좋겠네요. 참가 신청서는 나눔의 집 홈페이지(www.nanum.org)를 보시면 됩니다.
11:00-11:50 제2발표 里耶秦簡을 통해본 秦代 문서행정의 방식과 그 특징 발표 : 오준석(경북대) 토론 : 이성원(서울대)
오후 발표 사회 : 정철웅(명지대)
13:30-14:20 제3발표 6세기 中國 王朝의 雲南지역 지배와 ‘西爨’ - 爨瓚`爨震부자의 ‘竊據’와 남북조시기 ‘邊州’의 성격 발표 : 정 면(서강대) 토론 : 김상범(한국외대)
14:30-15:20 제4발표 북경 수도론과 대운하 - 明朝를 중심으로 발표 : 조영헌(홍익대) 토론 : 민경준(부산대)
15:30-16:20 제5발표 財政史의 각도에서 다시 보는 <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1882) 발표 : 문명기(인하대) 토론 : 김민규(동북아역사재단)
16:30-17:30 동양사학회총회
- 서양사부 (마태오관 104호)
오전 발표 사회 : 한운석(고려대)
10:00-10:50 제 1발표 17세기 후반 생시르 기숙학교에서의 연극의 교육적 역할 발표 : 강미숙(충남대) 토론 : 임승휘(선문대)
11:00-11:50 제 2발표 독일 노동운동의 사회정책 전문가 그룹 - 독일제국 시기 노동서기(Arbeitersekretäre)들의 활동과 역할 발표 : 신명훈(서울대) 토론 : 이진모(한남대)
오후 발표 사회 : 장세룡(부산대)
13:30-14:20 제 3발표 스페인 제 2공화국 몰락에서 스페인 파시즘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 ― 사라고사 지역의 폭력과 제도화를 중심으로 발표 : 김현철(연세대) 토론 : 황보영조(경북대)
14:30-15:20 제 4발표 엘리제조약을 위하여 - 유럽 통합과 독일-프랑스 화해의 샛길 발표 : 이용재(전북대) 토론 : 김승렬(경상대)
15:30-16:20 제 5발표 소비에트 시대에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경계에 서있던 공동주택 ‘코뮤날카’ 발표 : 기계형(서울대) 토론 : 김남섭(서울산업대)
16: 30-17:20 제 6발표 20세기 후반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한인사회와 한인 - 생활, 의식 그리고 생애 발표 : 김선정(한국외대) 토론 : 이희영(대구대)
17:30~18:30 서양사학회 정기총회 : 업무 ․ 결산보고 및 신임회장단 선출 진행 : 육영수(중앙대, 총무이사)
- 고고학부 (이냐시오관 소강당)
주제 : 장제의 고고학
10:20-10:40 총론 : 권오영(한신대)
1부 사례발표 사회 : 송만영(경기도 박물관)
10:40-11:00 마산 진동 고인돌의 축조공정과 계층성 발표 : 하승철(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11:00-11:20 경산 신대리 분묘군의 매장원리 발표 : 정 민(영남문화재연구원) 11:20-11:40 원주 법천리 고분군에서 보이는 매장 프로세스 발표 : 윤형원(국립중앙박물관) 11:40-12:00 나주 영동리 고분군 피장자의 친족관계 발표 : 이정호(동신대 박물관) 12:00-12:20 고령 지산동 고분군의 축조공정 발표 : 김경수(대동문화재연구원)
12:20-13:30 중식
2부 주제발표 사회 : 김아관(고려문화재연구원)
13:30-13:55 인골로 보는 장송과 피장자 발표 : 김재현(동아대) 13:55-14:20 고대의 장송과 제사 발표 : 김동숙(성림문화재연구원) 14:20-14:45 중국 한, 진시대 장제의 변화과정 발표 : 조윤재(고려대 고고환경연구소) 14:45-15:10 장묘제도의 정착과정 발표 : 山本孝文(고려대 고고환경연구소)
장내정리 및 휴식
종합토론 좌장 : 이희준(경북대)
15:30-17:00 발표자 전원
17:00-17:30 총회
- 과학사부 (마태오관 202호)
오전 발표 사회 : 강호제 (이화여대)
10:00-10:40 제 1발표 표준 한글 문자코드 논쟁, 완성형/조합형 논쟁을 중심으로 1986-1995 발표 : 박동오(과학기술정책연구원) 토론 : 남 영(한양대)
10:40-11:20 제 2발표 http와 입자물리학: CERN과 하이퍼텍스트와 소통 발표 : 김재영(이화여대) 토론 : 이관수(동국대)
11:30-12:10 제 3발표 새로운 발견의 출발점으로서의 실용수학: 시몬 스테빈의 항해술 연구 발표 : 정 원(서울대) 토론 : 한경혜(인하대)
오후발표 사회: 박권수(서울대)
13:40-14:20 제 4발표 금속활자의 중국발명설에 관한 연구 발표 : 조형진(강남대) 토론 : 이재정(국립전주박물관)
14:20-15:00 제 5발표 한성순보와 한성주보에 나타난 한역과학서적 발표 : 김연희(연세대) 토론 : 이면우(춘천교대)
15:30-16:10 제 6발표 한국 재생에너지 기술 개발의 초기 역사 - 70년대 태양 에너지 이용을 중심으로 발표 : 박진희(동국대) 토론 : 고대승(과학문화재단) 16:10-16:50 제 7발표 허문회의 육종연구와 박정희의 통일벼 발표 : 선유정(전북대) 토론 : 김태호(서울여대)
- 역사교육부 (가브리엘관 109호)
주제 : 역사교육과 박물관
오전 발표 사회 : 류승렬(강원대)
10:00~10:50 제 1발표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현장, 박물관 발표 : 최광식(국립중앙박물관장・고려대)
11:00~11:50 제 2발표 역사 텍스트(text)로서의 박물관 활용, 어떻게 할 것인가 발표 : 최석영(공주대) 토론 : 국성하(국립민속박물관)
오후 발표 사회 : 염인호(서울시립대 박물관장)
13:30~14:20 제 3발표 박물관에서의 역사교육 방안과 과제 - 서울역사박물관의 에듀케이터 활용문제를 중심으로 발표 : 연갑수(서울역사박물관) 토론 : 김남돈(전국학예사협회 회장, 강원대 박물관)
14:20~15:10 제 4발표 박물관을 활용한 중등학교 역사학습 방안 발표 : 김대현(인천 예일고) 토론 : 이상철(홍천여고)
15:20~16:10 제 5발표 사립 교육박물관의 운영과 역사교육 실천 사례 발표 : 김동선(덕포진 교육박물관) 토론 : 최윤희(조세박물관)
16:10~17:00 제 6발표 중국 혁명사 유형 박물관의 발전과 역사교육 - 홍색(紅色)기념관에서 다원(多元)문화박물관에 이르기까지
발표 : 팡지엔춘(홍익대) 토론 : 김창성(공주대)
- 미술사부 (다산관 101호)
오전 발표 사회 : 최공호(한국전통문화학교)
제 1발표 세키노 타다시(關野貞)의 고구려 고분벽화 조사에 대한 고찰 발표 : 이종수(명지대)
제 2발표 청말 趙之謙의 花卉畵와 後代에 미친 영향 발표 : 오지영(홍익대)
제 3발표 인도 근대 미술의 여성상과 민족주의(Nationalism)의 성장 : 바르마(Varma)와 타고르(Tagore)의 회화를 중심으로 발표 : 구하원(서울대)
오후 발표 사회 : 박은경(동아대)
제 4발표 15-16세기 조선 관요운영과 백자의 변천 발표 : 전승창(삼성미술관 Leeum)
제 5발표 일본 고베 다나카家 소장 고려후기 <비로자나삼천불도>의 고찰 :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법신의 조형적 표현 발표 : 강소연(동국대)
제 6발표 조선후기 지방 파견 화원들과 그 제도, 그리고 이들의 지방 형상화 발표 : 이훈상(동아대)
제 7발표 통일신라 8세기 불국사의 가람 배치에 구현된 화엄 세계관 발표 : 배진달(용인대)
- 경제사부 (마태오관 103호)
오전 발표 사회 : 김승욱(중앙대)
09:30-10:30 제 1발표 조선후기에 생산력은 발전하고 있었나? :노비 시장의 증거 발표 : 차명수(영남대), 이우연(낙성대경제연구소) 토론 : 양동휴(서울대)
10:30-11:30 제 2발표 Measuring Living Standard from the Lowest: Height of the Male Haengryu Deceased in Colonial Korea 발표 : 김두얼(KDI) 박희진(경북대) 토론 : 차명수(영남대) 11:30-12:30 제 3발표 부흥기 석탄산업 발표 : 임채성(배제대) 토론 : 정진성(한국방송통신대)
오후 발표 김대래(신라대)
14:00-15:00 제 4발표 전시기 조선총독부의 철강증산정책과 소형용광로 제철 발표 : 정안기(고려대) 토론 : 배석만(동경대)
15:00-16:00 제 5발표 일제말 조선인자본가의 군수회사 경영 발표: 배석만(동경대) 토론 : 정안기(고려대)
16:00-17:00 제 6발표 중화학공업화의 배경과 목표 발표: 박영구(부산외대) 토론: 여인만(강릉대)
<자유패널>
- 한국사상사학회 (마태오관 308호)
주제 : 17세기 후반 조선의 사상계와 문제의식
오전 발표 사회 : 홍원식(계명대)
10:00-12:00 제 1발표 숙종대 소론의 계보와 최석정 발표 : 김용흠(연세대) 토론 : 신병주(건국대)
제 2발표 朴世采의 학문과 儒學史 인식 발표 : 고영진(광주대) 토론 : 강신엽(육사박물관)
오후 발표 사회 : 설석규(경북대)
13:00-16:00 제 3발표 17세기 후반 송시열의 화이론 - 중국과 일본 학자 王夫之 ․ 山崎闇齋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발표 : 우경섭(인하대) 토론 : 김태연(인하대)
제 4발표 17세기 후반 林川趙氏의 學風과 經世論 발표 : 조성산(고려대) 토론 : 김정신(청주교대)
제 5발표 정시한의 학문과 그 영향 발표 : 정호훈(연세대) 토론 : 김학수(한국학중앙연구원)
16:20-18:00 종합토론 사회 : 조성을(아주대)
- 한국여성사학회 (마태오관 208호)
주제 : 여성사 실천과 대중화
오전발표 사회 : 유정희(연세대)
10:00∼12:30 제 1발표 포스트페미니즘시대 여성사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 발표 : 이성숙(한양대) 토론 : 이선이(서울여대) 10:50-11:30 제 2발표 대학내 여성사교양강좌의 현황과 문제점 발표 : 권순형(강릉대) 토론: 한희숙(숙명여대) 11:50-12:30 제 3발표 조선시대 여성사 대중서의 허와 실 발표 : 이순구(국산편찬위원회) 토론: 윤정란(숭실대)
오후발표 장병인(충남대)
14:00-14:40 제 4발표 역사체험학습 강사프로그램과 여성사 대중화 발표 : 정현주(북부여성발전센터) 토론: 신영숙(이화여대) 14:40-15:20 제 5발표 여성답사 바람을 일으키자 발표 : 최선경(문화유산해설사회) 토론: 강영경(숙명여대)
15:30-16:30 종합토론 사회 : 안태윤(경민대)
- 한국사학사학회 (마테오관 102호)
주제 : 역사의 효용과 오용
발표 사회 : 박인호(금오공대)
13:10-13:40 제1발표 기념의 홍수, 역사의 오용 - 19세기 독일의 민족 기념물들에 대한 비판적 고찰 발표 : 최호근(고려대)
13:40-14:10 제 2발표 역사와 대중매체의 이중주(二重奏) 발표 : 최용찬(연세대)
14:30-15:00 제 3발표 '以古爲今': 중국의 민족문제와 중화민족 국가관 발표 : 윤휘탁(한경대)
15:00-15:30 제 4발표 역사학자의 사명감과 직업윤리 발표 : 임상우(서강대)
15:30-17:00 종합토론 사회: 김기봉(경기대)
- 한국역사민속학회 (마태오관 101호)
주제 : 한국사에서의 소수자
사회 : 심재우(한국학중앙연구원)
13:30-14:00 제 1발표 조선전기 백정의 제민화정책 시행과 저항 발표 : 김동진(교원대)
14:00-14:30 제 2발표 조선시대의 환과고독 발표 : 박혜인(계명대)
14:30-15:00 제 3발표 조선 중엽 귀화 野人과 倭人의 생활 모습 - 蔚山戶籍(1609)과 海南戶籍(1639)의 사례 분석 발표 : 임학성(인하대)
15:00-15:30 제 4발표 한국 맹인 점복자의 전개양상 발표 : 김만태(안동대)
15:50-17:30 종합토론
토론자 : 이성임(서울대), 손병규(성균관대), 김경숙(조선대), 정창권(고려대)
- 고구려발해학회 (마태오관 201호)
사회: 김일권(한국학중앙연구원) 13:30-14:00 제 1발표 고구려의 지방통치 제도 발표 : 최희수(서강대) 토론 : 이성제(동북아역사재단)
14:00-14:30 제 2발표 高句麗 佛敎 初傳에 대한 검토 발표 : 표영관(강릉대) 토론: 조경철(한국학중앙연구원)
14:30-15:00 제 3발표 고구려와 발해의 해양문화 발표: 윤재운(동북아역사재단) 토론: 이유진(숭실대)
15:00-15:30 제 4발표 발해와 거란의 관계 - 거란 태조의 발해 적대의식의 배경 발표: 임상선(동북아역사재단) 토론: 윤영인(영산대)
문필기 할머니의 발인 때, 국장님이 진행을 하고, 사람들 한명 한명이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한명씩 한명씩 울기 시작한다. 다들 눈가가 젖어 있었지만 왜일까.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왜일까. 왜일까. ...
발인이 끝나고, 관을 영구차에 넣어서 보내고, 그 전날에 밤을 같이 보낸 몇명과 함께 서울로 돌아왔다.수업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때 출발하지 않고 화장까지 본다면 시간이 너무 늦을 것 같다는 핑계를 나 자신에게 하면서...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는 내내 혼자서 이런 생각을 하면서 갔다. 강변역에 도착해서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결국 내일이 아닌걸까. 이렇게 내 일정만 생각하고 돌아오는게 잘하는 것인가. 아니면 어쩔 수 없는건가, 아니면 변명인걸까.
장례식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며칠째 이 생각들을 정리 못하고 있다가 지난 피스로드 참가자였던 어리의 블로그에서 할머니 소식을 듣고 쓴 글을 보았다."
피스로드 워크샵 이후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문제를 나 자신의 문제처럼 생각하겠다는 다짐과는 달리.........(중략).............언제고 나는 제3자로 머물러 있을 것인지...'어쩔 수 없잖아.....'속으로만 되뇌는 변명 따위 이제 점점 질려만간다."
어쩔 수 없잖아 라는 변명은 한사람만의 고민은 아니겠지...
언젠가 나눔의 집에서 서울로 올라가면서 한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내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다. 내가 " 피스로드에서 '이게 내문제인가'로 토론을 하잖아요. 그런데 거기서 멈춰있는 것 같아요..." 라고 말을 했더니 ,선생님, "결국 다른사람의 일이잖아. "라고 쉽게 답을 했었다. 그때는 속으로 많이 놀랐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자기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나눔의 집에 다니고 또 행사를 도와주고 하는건지... 지금에 와서 그때의 말들을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그래, 결국은 남의 일이다. 내 자신, 내 가족이 아픈것도 아니다. 심지어 가족의 일이라고 해도 내 개인이 아픈건 아닌 거다. 결국 내가 급박할때 이건 내 문제가 아닌 게 된다. 할머니 들의 문제를 말할 때 쉽게 이건 내문제다. 라고 말하는 것도 경솔한게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고 내 문제가 아니니깐 그냥 내버려 둬야 하나. "나랑 전혀 상관없잖아, 신경쓰지말자"라고 하고 싶은건 아니다.
문제는 이 지점이 아닐까. 결국 내문제가 아닌 측면과, 그럼에도 그냥 내버려두기에는 안타깝고 뭔가 해야할 것 같은 그런 면에서 갈등하는 것.... 단순히 일본군'위안부'라는 문제를 떠나서 다른 문제를 생각 할 때, 우선은 자신이 남임을 깨닫는것, 내가 할수 있는일이란 것의 한계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한걸음 더 나가려면... 그렇게 드는 생각을 내가 그 부분까지 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야지. 내 자신이 행동하지 않는 변명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 일단은 여기까지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