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느지막히 일어나서 tv를 켰더니 가슴아픈 소식들이 들려온다.
이라크에 있는 근로자 피격으로 사망, 청계천 노점상 강제철거...젠장
그때문인가 아침에 나서면서도 기분이 그리 좋지 않다.
주위에 별다르게 밥을 먹을곳이 없다. 그래서 또 가다가 있는
기사식당에 들어갔는데.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기사식당이란곳은
반찬의 가지로 가격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는곳인가...
밥한공기에 반찬만 열몇까지, 불고기, 찌개, 계란후라이, 누룽지죽까지
...5000이라는 값이 문제긴하다.
계속 차도의 옆으로만 걷다가 몇번 옆의 농로로 바져본다. 확실히...
차를 피하지 않는것 하나가 이렇게 마음을 편하게 할줄은...
혼자 걷게 되니깐.. 이틀째인데도 상당히 적적하다. 팔짱을 끼고
묵묵히 걷다가도 휘파람을부르며 걷다가도, 노래를 부르며 걷다가도
결국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묵묵히 걷게된다. 뭐..이런건 처음
출발했을때부터 충분히 예상했던 것들이었으니깐... 이마저도 견디지
못하면 안되겠지
오늘은 남창에서 강진까지 약 32km.이다! 어제보다 10km을 더
걷는셈이다. 오전에 14km를 걸었으니... 출발은 순조로운 편이다.
우체국에 들러 친구들에게 종종 생각나면 부치려고 엽서를 사고
계속 걷는데 중간에 "바르게 살자"란 푯말이 보인다.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푯말에 '바르게 산다는건 무언가'를
생각하며 한참동안 고민했다.참 어떻게 말하기 어려운 거 아닌가...
'점심을 먹어야되는데..뭘먹지?' 라고 스스로에게 물으면서 마을을
살펴본다. 매번 밥을 먹을때마다 도데체 뭘먹어야 할지가 문제다.
여행을하면 같이 여행을 하는 사람의 본모습(?)을 알수있다고 했던가.
내생각에 본모습까지는 아니더라도 위기대처능력이나 무엇을결정할
때의 그 추진감정도는 볼수있을거다.
그건 혼자의 여행도 마찬가지다. 평소에 그냥 지나치던 자기자신의
단점이 더 확연히 보인다. 밥먹을거 하나 결정하는데도 머뭇머뭇대다
결정 못하고... 참 나자신이지만 왜이리 쪼잔한지....
결국 동네 자장면집에 가서 자장면 한그릇으로 저녁을 때운후
다산초당으로 향했다.
55번 국도를 따라 가다가 다산초당쪽으로 향하는 지방도로로 빠졌다.
빠지기전에 덤프트럭 , 레미콘때문에 상당히 걷기가 않좋다.
길 가로 걷다보면 느끼겠지만 우리나라의 국도,지방도는 갓길이
그다지 넓지가 않다. 그래도 일반 승용차나 작은 트럭같은경우는
그나마 차로에서 차지하는 공간이 많지가 않아서 여유가있지만..
덤프트럭의 경우가 되면 애기가 좀 달라진다. 도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 폭... 아슬아슬하게 지나가긴 하지만 지나간다음의
그 바람이란...
다산초당으로 빠지는 길은 역시 지방도라서 그런가.. 차들도 별로
없을뿐더러 가끔씩 보이는 차들도 속력이 그다지 빠르지 않다.
오늘걸은 길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길이 아닌가 싶다.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목에 도착했을땐 무슨 교육관을 짓는 공사가
한장이었다.박물관을 둘러보고 다산초당으로올라갔다.
그리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땀을뻘뻘 흘리면서 올라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다산초당에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이제는 초당이 아닌 목당(?)이지만 그래도 마루에 앉아 잠시 눈을
감아본다. 옆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소리가
참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혹 다산초당을 찾을 사람들에게...정말 혼자나 적은인원으로 가보길
바란다. 그땐 참 기분이 차분해지는 걸 느낄수 있을거다.)
백련사쪽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정자에서 보이는 풍경은 또 왜그리
탁 트여보이는지...그옛날 다산이 유배의 슬퍼하며 보았을 풍경을
난 좋다면 보고있으니 ... 참 역설적이란 생각이 든다.
3년전이었구나..학과에서 답사를 왔을때와 지금과 그리 다르지 않은
느낌이다.그땐 사람이 많았어도 내가 맘을 닫았었고... 지금은 누군가
도란도란 애기를 하고싶어도 말할 사람이 없으니말이다.
다산초당을 건너 백련사를 건너(백련사는 한창 무슨 공사중이었다.)
강진으로 향하는 도로에 들어섰을때, 아까부터 뭔가 허전한 기분의
이유를 알수 있었다. 모자를 다산초당에 두고온거다...
다시 올라가면 강진으로 가기가 힘들테고...결국은 그냥 가기로 했다..
다시 못돌릴거면 오히려빨리 털어버리는게 낫지...라는 생각에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얼마나 오르내렸다고 다리가 조금씩
아려온다. 에이, 강진에 들러 싼걸로 하나 사지뭐..
발걸음을 옮겨 강진으로 향한다. 한시간쯤 걸었을가... 저 멀리
도시가 보인다. 기쁜 마음에 '조금만더 얼마 안남았다'를 외치며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강진은 왜 그리도 먼건지...
한참만에 도착해서 우선은 자장면(벌써 자장면만 두번째다..)
으로 저녁을 때우고 찜질방을 찾았다. 한참 찾아가다 왠 청년들이
있길래 물어봤더니 반대편이란다. 그래서 또 한참을 걸어 도착했는데
없어졌단다...세상에.....
중간으로 돌아와서 여인숙이라도 들어갈까 싶어서 들어갔다.
만오천원이라고 하길래 애걸했더니 만원으로 깎아 주길래
이게 왠 떡이냐 하고 들어갔는데.. 방이 요상하다. 형광등도
그 정육점형광등이고 이불에 머리카락은 많고, 제일 문제는
방이 춥다는것! 어째 오늘은 일진이 않좋은 날인갑다.
늘어지게 늦잠을 잤다고생각했는데 깨어보니 8시다.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찜질방을 나와서 24시간 분식집에서
라면과 김밥으로 아침을 해결한 다음에 우체국에서 돈을 찾고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외국인전용 화장실"을 본적이 있는가..^^ 버스 정류장에 가서
차표를 끊고 아직 시간이 덜 되었길래 양치나 하러 화장실에
갔는데... 선명한 형광색으로 써있는 외국인전용 화장실...
혹시나 해서 열어봤는에 역시 양변기다...그냥 양변기나
좌변기로 쓰면 안되는거였을까?^^
버스를 타고 출발 시간까지 기다리면서.. 기사아저씨들이 농담을
주고 받는걸 들으면서..사투리들이 어색하다는 느낌보단
정겹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보면 표준어도 경기도 사투리니깐...
각 지방의 지방색이 남아있는 사투리가 코미디의 대상이 되는
자체가 코미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시간쯤 달렸을가.. 드디어 땅끝 마을에 도착했다.
여행이란 환상을깨는거란 말을 들은적이 있다. 어느곳, 또는 여행자체에 가지는 막연한 환상이 여행을 통해 깨어지는건가?
상당히 기대를 하며 간 땅끝이었음에도 글쎄... 정동진처럼 되어간다
는 느낌을 지울수가없었다. 게다가 큰 현수막에 "땅끝 레저타운"
을 선전하던데..그것마저 들어서게되면...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를 봤을때의 정동진이 그래도 용서가(?)
되었듯... 바다를 보았을때의 땅끝도 좋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땅끝 산책로를 한번 쭉 갔다오니 11시반..슬슬 출발하자며
다시 한번 배낭을 고쳐맸다. 가다가 점심을 먹긴 힘들것 같아
김밥을 샀는데 한줄에 2000원 이란다... 아무래도 한줄론 안될것 같아
"에이...한줄 더주세요.."
"한줄? ... 여행하는거죠? 1000원만 더내세요"라시며
"걸어서 여행하긴 추울텐데..."라고 하신다.
"여름엔 이렇게 걷는 사람이 많아요?"
"꽤 있죠. 보통 둘셋이서 같이 많이가요."라신다...
그에비해 난 혼자고 겨울인데....
땅끝마을로 내려가는 도로를 지나서 계속 걷고있다.
등짐이 약간 무거운 감이 없지않아 있지만 그래도 한시간정도
걷고 10분정도 쉬니 페이스가 맞는다. 첫날이라거 그런지
길이 좋아서 그런지...오른쪽에 햇살에 비치는 바다를 보면서
걷는데 참 기분이 좋다. 바다에서 들리는 파도소리며 통통배들이
확성기로 대화하는 모습이며, 아스팔트를 뚫고 피어난 꽃들도
참 예뻐 보인다.. 걸어서가 아니면 그냥 지나칠 풍경들...
중간에 벤치가 있길래 김밥을 먹으면서 지도를 본다. 오늘은 남창까지
약22km정도 걷는게 날것 같은데....
지도를 보는데 왠 아저씨가 말을 걸어온다.
"어디가남?"
"예. 걸어서 여행하는데요. 우선 오늘은 남창까지요"
"학생인가?"
"휴학하고있구요. 제대하고 잠깐 일해서 여행온거에요"
"그래... 어디까지 갈려고?"
"강원도 까지 갈려고 하는데요..'
"추울텐데... 그럼 수고하게..."
땅끝에 놀러간다는 그아저씨... 강원도 까지 간다는 말에
좀 놀라는 눈치다. 못믿나... 하긴 아직 나도 내가 갈수 있을지
모르겠다.
걸으면서 대충 셈을 해보니 10분~13분정도에 1km정도 를 걷는다.
그러면...쉬는시간까지 하면 한시간에4~5km를 걷는거고.
하루에7~8시간을 걷는다치면 한 30km정도를 걸을수 있겠다.
얼마나 걸었을까. 옆으로 보이던 바다도 이제 안보이고
나지막한 동산들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제 완전히 내륙으로
돌아선 모양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걷고있는데 왠 차가 빵빵거린다.
'누군가?' 하며 보니 아까 그 아저씨다.
"태워줄까?"
"(이아저씨가 놀리나...) 아뇨. 걸어가야되요."
"그럴줄 알았어. 그럼 조심해서 가게"
라며 부웅 차를몰고 간다. 그새 땅끝까지 갔다왔나보다.
5시반에 되어서야 남창에 도착을 했다. 남창은 땅끝에서 완도로
빠지는 길목에 있는 조그만 마을이다.
지도에서 봤을땐 20km이 훨씬 넘은것 처럼 보였는데.
지나온 이정표를 보고 계산을 해보니 한 22km정도 되나보다.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고.. 남창 사거리에 있는 기사식당에
들어갔다.
"백반하나 주세요"라며 가격표를 힐끗보니 5000원...에고...잘못들어왔나보다. 그래도 다시 나가기 귀찮고 피곤해서 그냥 앉아있었더니
주인아주머니왈
"겨울에 걸으려면 춥지 않아요?"라신다.
"어떻게 아셨어요?"
'아까 차 타고 오면서 봤거든요."
"네."
"자, 맛있게 드세요"
밥이 나왔는데... 와... 뭔 반찬이 이렇게 많이 나오냐...
정확히15가지가 나온다. 불고기,콩나물무침,숙주나물무침,다슬기무침
냉이무침, 김치, 깍두기, 게장,풋고추,등등...5000이 아깝지 않을만큼이었다.
허겁지겁 밥을 먹고나서 아주머니께 주변에여관이나 여인숙이 없나
물어봤더니 여인숙과 모텔 두군데를 알려주신다. (아에 찜질방은 기대도 안했다. 이런시골에 있을리가 없지.)
우선 여인숙에 갔는데... 상당히 느낌이 않좋다. 어두컴컴한데다
주인도 안보이고..."계세요?"라고 계속 소리를 치는데도
대답이 없다. 왠지 느낌이 않좋아 모텔로 갔는데...
이미 해가 져서 깜깜하다. 낮에는 오는 차들이 나를보며 피해가는걸
느낄수 있었는데... 깜감하니 차들이 거의 다가와서야 비켜간다..
모텔에 들어가서 가격을 물어보니.. 25000에서 30000이란다...
"저기요.. 혼자고 학생인데..어떻게 좀 깎아주실수 없나요.."
라며 물어보니 카운터에 아저씨.. 자기 소관이 아니라며 기다리란다.
한참을 기다리면서 불안했는데 주인아저씨.. 의외로 쉽게 2만원에
들여보내준다.
방에 들어가서.. 샤워를 하고 난 다음에 지도를 펴서 오늘 걸은 만큼을
형광펜으로 그었다. 아직 갈길이 멀지만...그래도 첫날은 무사히 보냈다는 안도감에 잠을 청한다.
수묵처럼 스쳐가는정
한가슴 벅찬마음 먼 발치로
백두에서 토말까지 손을 흔들게
수천년 지켜온 땅끝에서
수천년 지켜갈 땅끝에서
곷밭에 바람일듯 손을 흔들게
마음에 묻힌생각
하늘에 바람에 띄워보네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