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2009. 9. 19. 10:26
본격적으로 블로그를 개편할 예정. (이게 정말 몇번째인가?)
앞으로 쓸 글들은...

1. 일본군'위안부' 이야기
 - 현대 한일관계에서 빼놓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 일본군 '위안부'다. 지난 2005년부터 할머니 들이 살고계시는 나눔의 집을 다니기 시작해서 작년과 올해는 인턴을 했었는데, 아무래도 한번 설명 방식이 잡히다 보면 형식적으로 되어 버리게 마련.

그때 설명한 자료들, 그리고 아직 많이 던져져 있는 떡밥들(뭐 일단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 해 보자면 이승연 사건이라던가, 이영훈교수 논란이라던가, 국민기금이라던가, 일본 우익들의 주장이라던가, 베트남 전쟁이라던가.. 많구나...)을 정리 해 보고 나름대로 입장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개념부터 시작해서 역사적 배경, 논란들을 정리할 예정

2. 여행기 정리
 - 나름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정작 갔다 온 여행 중에서 제대로 정리한건 하나도 없다. 군에서 제대한 다음에 갔던 도보여행, 그리고 그 다음 해 여름 도보여행, 터키여행, 장준하기념사업회 중국 장정, 짧은 일본여행들, 오키나와 피스로드 아직 정리할 것은 많다.

3. 사진 정리
 - 올해 니콘D90을 지르면서 사진을 본격적으로 배우려고 하는데. 부족하나마 올리는게 실력을 올리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생각. 일단 많이 찍어보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겠지만. 찍는 것 말고도 정리하고 올리다 보면 그놈의 내공이라는 것도 늘지 않으려나...

4. 그리고 나머지는 공부 자료실.
책을 읽거나 논문을 읽거나 하고 간단히 정리할 예정.. 혹 그 책을 읽는 사람들은 도움이 될 수 있겠지. 아무래도 전공 책들은 정리하는데 한계가 있을테니깐...


카테고리를더 간단히 할 필요가 있겠군.

1. 주절주절 - 이걸 지울 순 없겠지
2. '위안부'리포트 - 사실 수요시위건 나눔의 집이건 다 포함할 수 있는 이야기잖아.
3. 바람이불어오는 곳 - 여행이야기
3. 그대웃음소리 - 사진이야기,  몇장 올리면서 써야지..
4. 자료실 - 논문 준비하면서 읽은 책, 연구사검토 등 올릴 예정 뭐 말그대로 자료실

Posted by 자료실 고양이
자료실2009. 9. 15. 21:29
이 글은 책을 읽고,  소감과 비평을 기록하고자 하는 비영리 목적으로 작성했습니다. 해당 글이 저자 또는 관련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고자 하는 의사는 없으며, 만일 그런 부분이 존재한다면 자체적으로 수정, 삭제 처리하겠으니 상세히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요시다유타카 저, 최혜주 역, 일본의 군대 - 병사의 눈으로 본 근대일본-, 논형, 2005.

1. 연구의 위치,  저자의 문제의식
 일본에서 군사사 연구는 전후 오랫동안 역사학의 분야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영역이다. 이는 전후 역사학이 의식적(이며 무의식적)으로 군사사연구에서 어느정도 거리를 두었기 때문이다. 전쟁 전과 같이 군사사 연구가 전쟁과 군대에 봉사하는 학문 영역이 되어버리는 것을 강하게 경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10)

 1980~1990년대 세로운 세대가 학계를 담당하면서 전쟁사, 군사사 연구는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특히 이들의 문제의식은 ‘군대의 존재가 사회의 형태를 어떻게 규정(혹은 역규정)하는가’이다. 또한 ‘전쟁희생자로서 민중’이라는 측면과 함께 가해자, 전쟁협력자로서 민중을 (그리고 병사를) 보려는 조류도 나타나고 있다. (11) 이 책은 이런 연구조류의 흐름 안에 있다. 기존 군사사 연구가 군수뇌부, 정치권을 중점으로 군의 역사를 서술하는 것, 각 전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대부분 이었다. 이에 비해 저자의 논의는 군대와 사회, 민중(병사)과 군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민중과 군대와 사회의 관계’라는말로 압축할 수 있다. 저자가 밝힌 이 책의 목적 든 ‘천황의 군대’가 민중의 내면적인 지지를 받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또 그 지지가 2차대전(15년 전쟁기)시기 왜 그렇게 급속하게 붕괴했는지이다.
 따라서 저자의 시선은 군대가 민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던 기반을 군대가 가진 근대적 사회질서(1장), 민중적 기반(2장)에서 찾고 있다. 또 그러한 근대화의 추진력이었던 군대가 개혁에 실패하고(3장) 전쟁을 거치며 오히려 그 개혁적 성격을 잃고있음(4장)에 주목하고 있다.

2. 내용
1장 근대사회의 형성과 군대
 군대와 사회의 관계에서, 저자는 근대적인 사회질서와 생활양식의 형성에 군대가 커다란 역할을 해 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1889년 징병령의 제정을 통해서 사회와 군대의 접촉면이 넓어졌다.(35) 그리고 일정표에 따라 집단적으로 생활하는 근대적인 시간질서가 도입되었고, (36) 표준화된 군대교육을 위해서 신체의 규율화(35)와 언어의 표준화가 진행되었다.(43)
또한 군대는 잔기리머리, 양복, 구두, 양식(육식과 빵식)을 먼저 도입해서 사회에 전하는 역할을 했다. (46~55), 물론 이것이 바로 사회에 적용된 것이 아니며 생활의 시계화 지체, 양식에 반대, 구두에의한 상처, 등 반발도 있었다.(56~60)

 일본에서 근대화란 사회와 군대 사이에 간격을 메워가는 과정이었고 이를 위해서 국가와 군대는 사회를 규율화하고 조직해갔다. 저자는 이를 군대식체조의 보급(63), 청년단과 재향군인회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65)결론적으로 일본에 보급된 근대적인 사회질서, 생활양식은 본래 군사적인 성격을 띈 것이기도 했다. (67)

2장 군대의 민중적 기반
 그러면 이러한 군대생활은 민중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까.(70) 민중들은 징병을 피하려고도 했지만(72) 더불어 징병검사를 한사람의 남자로 간주되는 인생의례로 여겼다.(73) 저자는 이의 근거로 젊은이의 성체험, 입대자나 제대자의 환영, 송영의식을 들고있다. (77) 징병기피와 환,송영의식에서 병역이 민중에게 양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군대가 가진 평등성도 민중이 군대에 가지고 있었던 시선에 영향을 미쳤다. 군대가 가지고 있는 표면적인 능력주의는 병영밖의 계급관계나 신분관계를 이완, 역전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82) 하지만 이 이면에는 병사의 개성이나 인격을 일률적을 부정하는 기능, 간부후보생 같은 고학력자에 대한 특혜등이 존재했다. 다음으로는 사회적인 상승통로로서 군대의 존재가 있다. 하사관의 기능을 대체하는 상등병제도, 하사관(특히 2,3남에게 매력이 있는 직업으로...),만주독립수비대, 육군의 소위후보자제도 등은 한계는 존재하지만 학력이나 자산이 없는 이들에게는 사회적 상승을 위한 하나의 통로로 기능했다.(102)군대를 지탱하고 있었던 또다른 요인은 농촌의 가난이었다. 농촌의 가혹한 노동실태는 오히려 군대생활이 긍정적이게 보이는 역할을 했다. 식생활역시 다이쇼 후반기부터 쇼와 초기 육군의 병식이 개선되면서, 일반민중의 생활을 웃돌았다. 이에 따라, 농촌은 양병의 공급지였던 것이다.

 그러면 민중의 어느계층이 가장 충량한 병사의 공급원이었을까. 저자는 갑종합격자의 학력, 지원자의 교육정도를 검토하면서 고등소학교 졸업정도의 학력을 가진 자들이 병사의 최대 공급원임을 밝힌다.(115~117) 또한 이들은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침투도가 가장 높은 계층이기도 했으며 이 계층은 자작하층, 자소작층과 중복된다고 분석한다.(122~124)

3장 총력전의 시대로
 일본의 군대는 독특한 정, 군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즉, 독자적인 정치세력인 군부가 존재했다.(128)또한 군령의 제정을 통해서 육해군은 새로운 형식의 법령을 독자적으로 설정할 수 있는 권한을갖게 되었다.(129) 이는 군부의 성립으로 이어지게된다. 또한 이 시기 일본군은 독자적인 이데올로기를 갖게 되는데, 과학적 합리성을 결한 정신주의, 경직된 공격제일주의와 보병의 총검돌격만능론, 그리고 극단적인 전군획일주의 등이 이 시기 일본군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131)

 1차세계대전이후 총력전의 양상,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영향으로 일본 군부도 군개혁에 착수하게 된다. 이를 통해 정신주의에 대한 반성, 우가키 군축, 용병사상의 변화, 군대내무서의 개정등이 이루어졌다.(132~146) 하지만 이러한 군개혁은 한계역시 가지고 있었다. 장교단은 여전히 폐쇄적이었고 개혁의 칼날을 피해갔으며,(147) 장교의 엘리트의식으로 하사관이나 소위후보자의 대우개선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예비장교는 경시되었고, (151) 장교의 주 모집기반이 사회의 중간층이 되면서 군사엘리트는 정치, 경제, 문화엘리트를 적대시하게 되었다. 군부는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병사의 기반변화를 인식하지 못했으며 고학력자에 대한 적대감은 여전했다. 결국 일본의 군부는 천황의 군대라는 기본적인 틀을 변화시키지 못했다.(166)
 결국 일본의 군대는 1차세계대전 이후 새로은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근본적인 자기혁신에 실패했고, 이 모순은 중일전쟁 이후 대량동원의 시대에 분출한다.(170) 일본의 군대가 초기 단계에서 근대화의 추진력이 되어온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제도의 확충과 공업화의 진전, 더욱이 민중의 정치적 자각이 고조되면서 군대가 가진 그러한 추진력을 점차로 쇠퇴해 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군대는 근대화의 질곡이 되어갔던 것이다. (170)

4장 15년 전쟁과 병사
 만주사변이 발발한 시기, 군부는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나갔고, 용병사상에서도 정신주의가 강조되어갔다.(174), 또한 ‘황군’이라는 인식이 강조된 것도 이 시기부터이다. 황군의식과 정신주의의 강조되면서 다이쇼시기 여러 군 개혁은 부정되어갔다. 군대내무서의 개정, 군인칙유의 절대화가 나타나게 된다. (187)
 중일전쟁기에 들어서면서, 일본은 완전히 전시체제기로 이행하게 된다. 하지만 이 시기 일본군은 기계화되지 못하였고, 말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또한 대량동원에 들어서면서 일본군은 현역병 중심의 동원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보충역보다는 현역, 예비역, 후비역의병사에게 의존했다. 연령이 높고, 기혼자가 많은 예비, 후비역들로 인해 군범죄, 하극상이 늘어났다. 하극상에 대한 염려로 전장에서 병사의 만행은 묵인되었고, 휴가제도의 문제점(210) 들은 아사, 해몰, 특공사 등으로 귀결된다. (211)

3. 활용자료
 이 책에는 특정 자료가 많이 쓰인 것 보다는 각 내용의 중간에 잡지, 수기, 회고록, 훈시, 신문기사, 설문조사 등이 다양하게 쓰였다. 병사들의 각 사례를 도출하기 위한 시도일 것이다. 다만 각 장에 통계들은,육군성 통계연보, 해군성연보, 육군사실연구회회보 등이 이용되었다.
 최근 구술사연구들에서 제기되는 문제이긴 하지만 특히 회고록, 수기 잡지등의 사료를 어떻게 비판적으로 수용, 이용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 회고록의 경우역시 마찬가지일 것.

우가키 군축등 내용에 우가키일기가 쓰임.

4. 비평
1). 자료 - 병사들의 수기, 담화 등의 활용
 기존 전사사, 전쟁사의 서술은 전쟁의 방향, 정치의 관계, 지휘관의 결정과정 등 거시적인 시각을 중심으로 서술되었다. 거시적 입장은 전체 전쟁의 상황, 정책의 흐름 등을 보기에는 적절한 방법이나 병사들 개개인의 입장에서 본 전쟁, 군대의 모습을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저자는 이런 점에서 병사들의 수기, 지휘관의 담화, 잡지의 기고 등을 주된 자료로 이용해서 병사들의 입장에서 군대라는 존재가 여러 층위를 가지고 있음을 분석했다. 수기, 담화 등은 상부의 정책 등이 실제 병사의 선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졌는가, 실행단계에서 어떻게 되었는가를 살펴 본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저자가 이용한  사료들은 주관이 들어갈 여지가 크다는 점에서 불안하다. 딱히 사료의 이용에 대해서 밝히지 않았지만 수기와 담화 같은 경우 당시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지만 이 자료로 당시의 인식을 일반화하기에는 무리일 가능성이 크다.

2). 민중과 군대의 상관관계
 저자의 문제의식은 ‘천황의 군대’와 민중의 관계이다. 저자는 기존 연구는 천황의 군대가 국민적인 기반을 갖지 못한 것으로 서술되어졌고 그렇다고 군대의 국민적 기반이 강고했음을 중시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민중은 군대를 동경했지만 동시에 혐오했다는 점, 특히 만주사변 이후 지지의 급속한 붕괴라는 점을 내재적으로 보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저자는 크게 세 부분으로 이 점을 논증하고 있다. 우선 군대가 사회, 민중에게 끼친 영향을 살피고(1장), 군대가 민중과 가진 관계, 즉 지지기반을 분석하고(2장), 이후 이 지지기반이  ‘15년전쟁’을 통해서 어떻게 붕괴해 가는지(3장)를 살펴보고 있다.
 하지만 저자가 보고 있는 ‘민중’은 어떤 계층인가. 민중의 어떤 계층에서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고, 충량한 병사의 공급원이 이었는지가 문제가 된다. (115)
저자는 갑종 합격자 상황에서 고등소학교 출신이 가장 많고, 이들 출신은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침투도가 높으며 졸업 후 왕성한 학습 의욕은 그 정도의 생활상 여력이 있는 계층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즉 자작 하층 자소작 층으로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학력상으로 판단하고 나서 저자는 이후 노동자, 도시출신자가 병사의 다수파가 되는 것 역시 밝히고 있다. 결국 충량한 병사의 공급원이 바뀌는 것이지만 이들이 어느 정도 직접적인 지지기반인지는 불명확한 채 서술이 마무리된다.

3). ‘중일전쟁 이후 대량동원의 시대에 분출한 모순’은 어떤 것이었는가
저자는 일본군이 개혁을 시도했으나 커다란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장교단의 폐쇄성, 장교의 엘리트 의식, 예비장교의 경시, 장교단의 사회적 기반 변화,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병사층의 변화, 연성군대로의 전환 실패, 고학력자에 대한 적대감, 천황의 군대를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것, 전시 급식체제의 한계 등을 들고 있다. 그리고 이 모순들이 일단 잠복되어 있다가 중일전쟁 이후 대량동원의 시대에 분출하기에 이른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가 앞에서 들었던 모순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지점에서 드러나게 되는지에 대한 분석은 미흡하다. 4장에서는 군부의 정치개입, 황군의식의 고창, 군대내무서의 개정, 늦은 기계화, 예비역과 후비역의 관계, 하극상, 전쟁 신경증, 아사, 해몰 특공사에 이르기 까지 전쟁기에 나타났던 일본군의 많은 모순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이것들이 처음 저자가 이야기 했던 것처럼 민중의 지지철회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앞서 이야기 했던 군 개혁의 한계가 어떻게 작용한 결과인지에 대해서는 분석이 미흡한 점이다. 분명 전시기 일본군의 행동들은 모순된 것이었으나 그 원인, 결과에 따른 분석이 필요하다.

4. 일본군의 역사는 지금 한국의 군을 보는 시사점이 될 수 있다.
‘군대가면 정신차린다’라는 말 / 신체의 규율화와 언어의 표준화 / 군대어 / 군화를 신으며 생긴 상처 / 성체험 / 인생의례로서의 군대 / 비합리성 등등

 일본의 군대에 관한 많은 특징들을 보면서, ‘일본군’이라는 단어만 없앤다면 마치 지금 한국의 군대를 서술하는 것과 그리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만큼 당시 일본군과 상황은 비슷하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 대로 일본의 군대는 한국의 군대를 보는 데 시사점을 준다. 한국은 전쟁 전 일본과 마찬가지로 징병제를 채용하고 있다. 또한 현재 한국군의 건군과정에서 일본군 출신의 장병이 미친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일본군의 속성은  현재의 한국군의 속성과도 연결된다.

 일본군과 마찬가지로, 해방 직후, 분단이후 한국군의 모습은 근대화의 표상이기도 했고, 교육의 장이기도 앴다. 하지만 근대화의 주역으로 작용했던 일본군이 점차 근대화의 장애가 되었던 것처럼, 현재 한국의 군대는 사회의 발전속도에 발맞추지 못한지 오래다. 따라서 저자가 주목했던 과거 일본군의 문제점을 보는 시각은 지금 군이라는 조직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다만 이 문제점이 군이 가지는 일반적인 속성인지, 혹은 일본군과 한국군만이 가지는 속성인지, 비슷한 속성을 가지지만 분출되는 시기나 상황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는 더 살펴 볼 필요가 있다.


Posted by 자료실 고양이
주절주절2009. 9. 2. 20:26
친구에게 최근 티스토리를 소개 해 주었는데 그이가 남긴 글 중에 이런 말이 있다.

공개 블로그를 통해 신세한탄+자기연민+감정배출을 벗어나서 좀 생산적인 글을 써보려고 한다.

오히려 시작한 지도 꽤 되었다만 내 블로그가 딱 그 꼴.최근 올린 글을 보니 전부다가 신세한탄과 자기연민, 그리고 감정배출이었군.내 모든 관심을 여기에 쏟을 수는 없는 것이고.내가 관심가지는 주제에 관해서 제한 하는게 이 블로그의 정체성을 살리는 길이겠지.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누군가가 들으라는 듯이'나 힘들어요'라고 만 말하고 있는 블로그라는 느낌이 강하다.

무엇인가 나만이 이야기 할 수 있는 글들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 좋은 발전방향이 아닐까? 조금더 고민해 보면서 욕심 부리지 않고 이야기 해 나갈 수 있는 주제를 잡아보련다. 더이상 신세한탄과 자기연민은 그만, 누군가라도 얻어갈 수 있는 '정보'가 있는 블로그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가.

어, 그러고 보니 이것도 자기연민인가?
Posted by 자료실 고양이